발행인 류종철

『어느 날 노인네 한분이 밤새 치통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날이 밝자 마자 치과로 차를 몰았습니다. 주차장 입구는 이미 만원이고 주차할 곳이라고는 이면도로의 길 언저리 뿐 이었습니다. 그는 급한 마음에 다른 불법주차 차량과 같이 급히 주차를 하고 치과진료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주차 단속이 있었습니다. 그가 돌아왔을 때 젊은 단속원이 그의 차량 앞에서 그를 찾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하소연하였습니다. 일생동안 한 번도 법을 어기지 않고 나름 선량하게 살았고, 지금도 누구에게 큰 위해나 불편을 준 것도 아닌데 한번만 봐 달라고 빌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주차단속원이 과연 주차 딱지를 발급하여 법을 엄격히 집행할 것인지, 아니면 노인의 사정을 고려하여 그냥 묵인할 것인지 큰 관심을 갖고 말입니다. 그 단속원은 말없이 주차위반 스티커를 발급하여 노인에게 건네주고 돌아서서 다른 업무를 보기 위해 멀어져 갔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야속한 법 집행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의 엄격한 법집행에 찬사를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노인은 섭섭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스티커의 벌금을 확인하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고지서에는 치아 치료를 잘 받으시고 얼른 나으시라는 문구만이 적혀 있었습니다.』

엄격한 법 집행은 공동사회를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기본적 덕목이다. 사람의 지위나 환경에 따라 좌우되는 평등하지 못한 법집행은 시민 공동체를 공정하게 유지하는데 많은 혼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인정이 결여된 채 무조건적인 준법만 강조하는 말은 이미 군부 독재나 정통성을 결여한 지배자들에게서 무수히 듣던 말이다.

법은 사람 공동체의 행복과 안위를 위한 약속이다. 구성원 집단의 행복과 안전을 위한 약속이 구성원 개개인의 행복과 안전을 희생하면서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 대상이 극히 일부의 시민들이고 그 희생이 비록 미미한 크기 일지라도 법의 권위를 이야기하기 전에 꼭 고려되어야 할 가치다. 즉, 법 집행을 위한다는 작은 명분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누르는 큰 오류를 법해서는 안 된다. 하위의 법은, 인권과 표현, 집회 그리고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 상위의 법, 헌법을 앞설 수는 없다. 법을 문자에 집착하거나 엄격한 집행만을 최고의 가치로 앞세우는 法治는 사람의 가치를 우선하는 仁治, 德治를 넘어 존재할 수는 없다.

갈등의 시대다. 특히 정치의 계절, 선거철에 고소고발이 지역사회에 횡행하고 있다. 물론 억울하고 분한 경우도 있겠지만,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좁은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극단적 비난과 고소 고발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갈등을 조정하고 인내심을 갖고 대화로 풀어야할 문제들이, 특히 개인적인 차원의 사익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공익적 의견 다툼에서 나타나는 충돌을 조정해야할 의무가 있는 행정기관에 의한 고소, 고발은 너무 법치만 우선시 하는 성급함으로 보일 수 있다. 거기에는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성군의 이미지나, 현대적 의미에서도 시민의 심부름꾼으로서의 이미지는 아니다.

혹여 법조문만으로는 위법사항일지라도, 그리고 행정당국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의 행동이 사회전반에 해악을 끼치는 행동이 아니라 공동체의 평안과 행복을 위한 다른 의견을 표현하는 행위라면, 그 표현의 옳고 그름을 떠나 엄격한 법집행 이전에 그들과 진솔히 소통하는 아름다운 德治가 더 아름답지 않은가?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이면 그들의 고통이 안쓰럽고, 꽃 피는 따사로운 봄날에는 그들에게는 아직 찾아오지 않은 봄이 훌쩍 지나갈까봐 1호 광장을 지날 때는 마음이 몹시 무거워진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그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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