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림종합건설(주) 최길학 회장

 

건설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와 기본에 충실함’

3년 안에 상공회의소 회관을 건립하는 것이 ‘소망이며 꿈’

 

<인터뷰에 앞서>

 

건설업 한 길로 지역에서 30년을 맞는 기업인이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강산이 세 번 바뀐 긴 세월이다. 누구에게는 서산상공회의소 회장으로, 또 누구에게는 서산을 대표하는 지역 건설인으로 잘 알려진 서림종합건설(주) 최길학 회장.

최 회장은 2001년 서산상공회의소 3대 회장 취임을 시작으로 2015년 1월까지 장장 13년이라는 기간 동안 3, 4, 5, 6, 7대 회장을 맡아 지역의 상공업계를 이끌어 왔다.

1990년 3월 오성주택(주)을 설립하여 본격적인 건설업에 뛰어 든 지 30년. 최길학 회장은 인터뷰 서두에 어느 작명가가 지어준 서림(徐林)에 대한 글자 풀이로 말문을 열었다.

“서(徐)는 ‘평온하다’, ‘펴다’라는 뜻의 글자인데 지난 30년 서림의 역사를 돌아보면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뒤돌아볼 여유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 세월의 이야기. 최길학 회장의 입을 빌어 들어보고자 한다.

 

# 6.25 피난민으로 염전을 찾아 서산에 정착한 부친

 

황해도 옹진에서 염전 기술을 가지고 있던 최 회장의 부친은 6.25 당시 피난민으로, 염전을 찾아 서산에 터를 잡았다. 10남매 중 여섯째인 그는 “우리 아버지는 힘들었을지 모르지만 성장과정에서 우리 형제들은 크게 어렵진 않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자동차를 유난히 좋아한 그는 젊은 시절 운수업을 시작했다. 기자가 최 회장에게 “당시 택시 드라이버였다면 돈은 꽤 많이 벌었겠다”고 말하며 웃자, 난색을 표하며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비포장이니까 (차)고장 나기 일쑤라 벌어서 차 고치다 보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고 말했다.

“그래도 운명이라 생각했죠. 다른 사업은 꿈도 꾸지 않았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반려자를 만나는 행운이 찾아 왔지요. 차가 고장 나 기술자를 불렀는데 무엇이 잘못됐는지 기술자가 화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당시 의료수준에서 화상이란 것이 어디 하루 이틀 만에 치료가 되는 상처가 아니지 않습니까. 기술자가 20일 가량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 보니 매일 병문안으로 병원을 들락거렸죠.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그때 화상 병동 간호사가 어찌나 예쁘던지 첫눈에 반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만난 우연이 인연이 되어 우리는 다음해 결혼을 했고 슬하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남매를 두었습니다.”

 

# 안면도 개발의 주도적 인물을 승객으로 태운 것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아이들이 커 나가는 모습을 보며 하루하루가 마냥 행복했었습니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던 어느 날, 택시에 안면도로 가는 손님을 태울 기회가 있었지요. 그들은 당시 안면도를 개발하던 건설업자들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말하지만 사실 그 때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벌써 40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말이에요.”

최 회장은 당시 건설업자 손님을 모시고 다니는 것이 계기가 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됐다. 이후 개발에서부터 건축, 토목, 지하수 공사 등에 이르기까지 건설에 관한 공부를 하게 됐고, 머릿속에 차곡차곡 건설 관련 지식을 저장해 갔다.

 

# 1990년 오성주택(주) 설립으로 건설업에 뛰어들다

 

1990년대는 법인이 있어야 종합건설 신청이 가능했다. 최 회장은 오성주택(주)이란 법인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건설업계에 대해 최 회장은 “회상해 보면 건설업에 입찰이라는 것이 있는데 업자들끼리 서로가 서로에 대한 경계심이 유난히 강한 시절이었죠. 그러다보니 알게 모르게 오해도 낳고. 수주를 따는 사람은 한 명이다보니 나머지 사람들이 투서를 하고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고통도 많이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진감래라 했던가요. 지금껏 해오다보니 오늘 같은 봄날에 또 이렇게 인터뷰도 다 해봅니다(웃음).”

“그때 같이 시작한 사람들 중 서산에는 저만 건설회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당시와는 많이 다르죠. 공사를 할 때 서로 협력하여 일을 진행하기도 하고... 격세지감이라고 할까 입찰방식 또한 아주 투명해서 서로 얼굴 붉힐 일 없어 참 좋습니다.”

 

▲ 서림종합건설(주) 사옥 전경

 

# 지난 30년 건설업 한 길을 걸어왔는데...?

 

“건설회사는 100%를 팔아야 살아남습니다. 그러나 30년이라는 업력을 가진 우리 서림에게도 몇 년이 지나도록 이자만 꼬박꼬박 치르고 있는 데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서림건설)가 했기 때문에 서산시의 산업 인프라 구축이 되지 않았나 하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물론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요(웃음).”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팔리지 않은 곳이 어디냐?”고 묻자 최 회장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성연을 예로 들었다.

“현대에서 서산AB지구 방조제를 막을 때만 해도 천수만 쪽으로 자동차 단지가 건설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죠. 하지만 여러 이유로 무산되면서 성연 쪽에 자동차 입주단지가 추진됐습니다. 그러나 계획과 달리 전기차로 급변하는 자동차 시장의 변화로 현재 성연 산업단지는 시련을 겪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다보니 저도 덩달아 과도기를 걷고 있고 말입니다.”

최 회장은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격변기로 인한 지역 산업단지가 겪게 되는 아픔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산업단지 건설은 민자유치 사업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업자의 돈으로 땅을 사서 구획을 정하고 분양까지 해야 하는 대규모 사업이지요. 돈이 없는 소규모 건설사는 덤비기도 어렵습니다. 지역경제 입장에서 보면 산업단지 건설은 엄청난 기회이자 이득입니다. 기업이 들어오면 유입 인구 증가는 물론 지방세, 법인세가 늘고 일자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소득이 늘면 돈이 돌고 도시는 커지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물론 민자유치가 성공한다는 전제에서입니다. 하지만 산업의 변화란 예측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제 덩치가 큰 사업일수록 지자체에서 직접 하기는 어렵습니다. 산업단지 건설에 뛰어 들어 성공도 있었고 어려움도 있었지만, 서림은 기업의 성장뿐만 아니라 지역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성공시킬 것입니다.”

최 회장은 성연 산업단지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믿고 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 한솥밥을 먹는 식구들 어느덧 70여 명 “내가 강해져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나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최길학 회장에게 있어 직원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처음 출발은 다섯 명이었는데 지금은 대식구가 되었습니다. 70여 명이 한 솥밥을 먹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모든 분야에서 자기 일처럼 적극적으로 임해주니 우리 직원들이야 말로 서림의 토대가 되어줍니다. 사실 서산과 같은 소도시에서는 인적 자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아니겠습니까. 전문 기술직들은 대도시에서 이곳으로 내려오질 않으려 하니 당연하지요. 그럼에도 굴곡 많은 건설회사에서 저를 믿고 따라준 우리 직원들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직원들의 존재는 저로 하여금 스스로 강해져야할 이유가 되기도 하지요. 이건 제 자랑입니다만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단 한차례 봉급 날짜를 미뤄본 적이 없습니다(웃음).”

 

# 서산상공회의소 산 증인으로서의 꿈은?

 

“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은 13년 동안 열악한 상공회의소를 이끌면서 제 건물에 둥지를 틀게 했고, 건물을 내어 준 죄(?) 덕분에 임대료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 뿌듯합니다.(웃음)”

“이제 상공회의소 건축 추진위원장으로서의 꿈은 자체 회관을 번듯하게 짓는 것입니다. 기자님도 아시겠지만 (상공회의소)기업들이 자율적으로 회비 내는 돈으로 운영되지 않습니까. 대산지역 기업체들과 성연지역 기업체들이 많은 보조를 해줘 그나마 지금은 편안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합니다. 서산지역 상공인들의 숙원사업인 상공회의소 회관을 3년 안에 건립하는 것이 제 소망이며 꿈입니다.”

 

# 작은 건설회사 미래는 ‘유지보수’에 달렸다

 

건설업의 향후 전망과 미래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최 회장은 길게 한숨을 쉬며 “도시 건축은 일반적인 것이기에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지만 건설산업의 미래는 밝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건설시장은 포화상태입니다. 심지어 농로포장까지 되어있을 정도니 말 다했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 서산은 다목적 부두항과 도로망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향후 대중국 수출기지로서 대한민국 많은 물동량이 서산을 거쳐야 한다면 아마도 대산항은 최첨단 거점도시로 성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지역의 작은 규모 건설업을 영위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경영방식을 요구합니다. 새로운 건설보다는 ‘유지보수와 관련된 일이 주가 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생각을 해봅니다. 실리를 택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는 신규로 하는 건설보다 큰 회사들이 건설해 놓은 것을 유지 보수하는데 초점을 맞춰 선택과 집중 경영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작은 건설회사들이 살아남는 법입니다.”

 

# 제 나이는 이제 ‘뜻대로 행하여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

 

“제 나이 벌써 70을 넘겼습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고희를 두고 ‘뜻대로 행하여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라 했죠. 쓰고 가야 내 돈이지 그렇지 않으면 서산말로 ‘시절’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돈은 늘 ‘어떻게 써야 옳은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드러내놓고 도우면 ‘돈 좀 있다고 저러나!’라고 손가락질 하는 경향이 있어 조심스럽거든요. 지금은 베풀고 싶다든가 봉사하고 싶으면 쌀로, 여행비로, 여러 가지 이름으로 그냥 합니다. 그 중에 배움이 부족했던 우리 시절이 생각나 장학금으로 나가는 것이 가장 뜻 깊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건설복을 입고 지낸 기간 동안 최 회장은 한 가지 질문을 끊임없이 생각해 왔다고 한다. ‘건설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건설업 30년, 70 인생을 넘기면서 이제 그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기초와 기본에 충실한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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